합격수기_이*선_2016 이대 번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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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번역대학원 진학 동기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40대 정도가 되어서는 번역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오래 유학하였고 평소 업무 관계상 영어를 달고 살았기에 대학원 진학은 생각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번역가로서의 전문성 및 영어 구사가 뛰어난 많은 유학파들과의 차별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원 진학이 필수라는 점을 깨닫게 되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입시 준비를 시작할 당시 영어 실력
저 같은 경우, 영어권 국가에서 현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였기에 영어 구사에 대한 부담감은 상대적으로 덜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 거주 경험이 이점으로 작용한 점도 있는 반면 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중학교 이후로 없었고 고급 한국어 구사가 어려웠습니다.
나만의 입시 공부 노하우
지난 해 4월에 입시준비를 시작한 후 약 7개월 동안 양성애 선생님의 주말 반 수업과 양시래 선생님의 주중 반 수업을 병행하였습니다. 그리고 6월 한 달 정도는 온전히 영문법 공부에 치중했었습니다. 학원 수업 수강 이외에 별도의 스터디는 하지 않았고 자습을 주로 하였습니다.
자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관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위해 전 매일 Study Log를 작성하여 그 날 어떤 공부를 얼마나 하였는지 기록하였었습니다. 특히 저의 경우 직장생활 때의 습관이 남아서인지 낮 시간에 공부가 잘 되고 해가 지면 두뇌가 활동을 멈춰버려서 한정된 오전~오후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했습니다. Study Log를 작성하면 그 날 하루를 마무리하며 무엇을 얼마나 공부했는지 점검할 수 있고 차일의 계획도 세워볼 수 있으며 일주일을 기준으로 하루 평균 몇 시간을 공부했는지 알 수 있어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 방법은 시기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크게 번역복습, 신규번역, 독해, 단어 이렇게 네 부분에 집중했었습니다. 번역복습에는 그 주에 수업에서 본 모의고사를 활용하였고 신규번역의 경우, 한영번역은 사설 혹은 논평 발췌본을, 영한번역은 영자신문의 Opinion 혹은 Bernard Russell 자료 등을 이용했었습니다. 복습 시 40분을 커트라인으로 정해놓고 연습했던 반면 새로운 문서를 번역할 때는 시간을 충분히 두고 잘 번역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독해자료로는 영한번역에 활용한 신문 및 철학서를 참고했었는데 스터디를 했다면 보다 다양한 자료 및 정보를 접했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어공부는 유의어 중심으로 했습니다. 다시 말해 번역 시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않고자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여러 영단어를 함께 외웠었습니다. 그리고 전자파일 대신 손 글씨로 단어노트를 만들어 사전처럼 어떤 단어를 찾으려면 아래, 위, 옆으로 있는 다른 단어도 다시 한번 볼 수 밖에 없게끔 했었습니다.
10월 초까지도 평균 공부시간을 유지하며 나름 평정심을 갖고 공부했었는데 한 2주 전부터 멘붕이 왔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래 계획은 그 2주 동안 당시까지 수업에서 봐왔던 모든 모의고사 자료들을 복습하는 것이었는데 계산했던 것 보다 그 양이 훨씬 방대해서 계획을 수정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그 전에 번역이 잘 안 된다고 생각했던 샘플들은 두 세 차례 연습을 해놓았었고 9월 수업 분은 비교적 기억에 남아있어서 선택적으로 번역복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시험을 본다고 생각하고 80분의 시간을 정해놓은 후 한영, 영한 한 세트씩 연습하였고 번역하는 중간에 쉼 없이 자신 있는 표현으로 채우는데 주력했었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진짜 멘붕이 왔었습니다. 얼른 끝내버리고 싶은 생각과 답답함에 정말 말 그래도 몸부림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험일로부터 5일 전부터는 아예 공부시간도 평소의 1/3로 줄이고 마음 편히 있었습니다. 시험 전날에는 다른 거 하나도 안 하고 단어노트와 문법노트만 보고 푹 쉬었습니다(물론 잠은 한 숨도 못 잤지만요).
시험당일 및 시험전략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시험날 아침에는 부슬비가 내리며 날이 을씨년스러웠는데 시험 끝나니까 맑아졌었다지요. 전날 한숨도 못 자고 아침에는 긴장감에 속이 메슥거려 커피만 마시고 시험장에 들어갔었습니다. 앞뒤, 양 옆의 모든 분들이 시험시간 직전까지 공부하시는 동안 전 시험 당일에 공부하면 망한다라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어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대신 잘 볼 거라고 끊임없이 저 자신을 세뇌시키며 안정을 취했습니다. 마음을 편이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세운 시험전략은 ‘원본을 안 봐도 될 만큼 매끄러운 번역본을 만들자’ 였습니다. 이 부분은 선생님께서도 누누이 강조하셨던 부분이셨습니다. 이에 추가로 영한이 자신이 없었기에 ‘한영은 무조건 잘 보자’도 있었습니다.
시험 지문은 모의고사 및 전년도 시험보다 쉬웠으나 역시 매끄럽게 풀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 있었던 한영을 먼저 풀었는데 한영의 경우 지문 자체가 길었고 정말 다양한 내용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예술작품으로 시작하여 핵 이슈에 이어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도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핵 이슈와 관련된 부분에서 직역을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의역을 했었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수업에서도 몇 번 커버했던 내용이어서 자신 있게 써내려 갔었습니다. 그리고 문법 오류로 감점 받지 말자는 생각에 나중에 검토할 때 문법에 신경을 많이 썼었습니다. 영한은 한영에 비해 지문이 짧았고 정말 운 좋게도 주제가 경영학 전공에 경제연구원을 다녔던 저의 배경이 도움이 될 만한 주제였었습니다. 하지만 첫 문장부터 고민은 시작되었고 역시 어떻게 매끄럽게 풀 것이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전 한영보다 영한에서 의역을 훨씬 더 과감하게 했었습니다. 아예 원문이 드러내놓고 있지 않은 뜻을 풀어 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 결정이 제게 장학금을 안겨준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모르는 단어가 4개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티 안 나게끔 매끄럽게 지어(?)냈었습니다. 한영과 영한 모두 결국 ‘매끄러운 번역본’을 써내는 것을 주 목표로 삼았었는데 그 부분은 나름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공부할 때 ‘시간은 짧게, 지문은 길게’를 고수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도 긴 지문을 모의고사로 출제하셨었는데 시험 당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 영한, 한영 각각 두 번씩은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누누이 강조하셨었는데 마지막에 번역 후 검토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정말 큰 것 같습니다.
대학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40대 정도가 되어서는 번역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에서 오래 유학하였고 평소 업무 관계상 영어를 달고 살았기에 대학원 진학은 생각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번역가로서의 전문성 및 영어 구사가 뛰어난 많은 유학파들과의 차별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대학원 진학이 필수라는 점을 깨닫게 되어 대학원 진학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입시 준비를 시작할 당시 영어 실력
저 같은 경우, 영어권 국가에서 현지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였기에 영어 구사에 대한 부담감은 상대적으로 덜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어권 국가 거주 경험이 이점으로 작용한 점도 있는 반면 문법을 체계적으로 배운 적이 중학교 이후로 없었고 고급 한국어 구사가 어려웠습니다.
나만의 입시 공부 노하우
지난 해 4월에 입시준비를 시작한 후 약 7개월 동안 양성애 선생님의 주말 반 수업과 양시래 선생님의 주중 반 수업을 병행하였습니다. 그리고 6월 한 달 정도는 온전히 영문법 공부에 치중했었습니다. 학원 수업 수강 이외에 별도의 스터디는 하지 않았고 자습을 주로 하였습니다.
자습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관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위해 전 매일 Study Log를 작성하여 그 날 어떤 공부를 얼마나 하였는지 기록하였었습니다. 특히 저의 경우 직장생활 때의 습관이 남아서인지 낮 시간에 공부가 잘 되고 해가 지면 두뇌가 활동을 멈춰버려서 한정된 오전~오후 시간을 최대한 잘 활용해야 했습니다. Study Log를 작성하면 그 날 하루를 마무리하며 무엇을 얼마나 공부했는지 점검할 수 있고 차일의 계획도 세워볼 수 있으며 일주일을 기준으로 하루 평균 몇 시간을 공부했는지 알 수 있어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도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 방법은 시기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었으나 크게 번역복습, 신규번역, 독해, 단어 이렇게 네 부분에 집중했었습니다. 번역복습에는 그 주에 수업에서 본 모의고사를 활용하였고 신규번역의 경우, 한영번역은 사설 혹은 논평 발췌본을, 영한번역은 영자신문의 Opinion 혹은 Bernard Russell 자료 등을 이용했었습니다. 복습 시 40분을 커트라인으로 정해놓고 연습했던 반면 새로운 문서를 번역할 때는 시간을 충분히 두고 잘 번역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독해자료로는 영한번역에 활용한 신문 및 철학서를 참고했었는데 스터디를 했다면 보다 다양한 자료 및 정보를 접했을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어공부는 유의어 중심으로 했습니다. 다시 말해 번역 시 같은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지 않고자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여러 영단어를 함께 외웠었습니다. 그리고 전자파일 대신 손 글씨로 단어노트를 만들어 사전처럼 어떤 단어를 찾으려면 아래, 위, 옆으로 있는 다른 단어도 다시 한번 볼 수 밖에 없게끔 했었습니다.
10월 초까지도 평균 공부시간을 유지하며 나름 평정심을 갖고 공부했었는데 한 2주 전부터 멘붕이 왔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원래 계획은 그 2주 동안 당시까지 수업에서 봐왔던 모든 모의고사 자료들을 복습하는 것이었는데 계산했던 것 보다 그 양이 훨씬 방대해서 계획을 수정했었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인건 그 전에 번역이 잘 안 된다고 생각했던 샘플들은 두 세 차례 연습을 해놓았었고 9월 수업 분은 비교적 기억에 남아있어서 선택적으로 번역복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시험을 본다고 생각하고 80분의 시간을 정해놓은 후 한영, 영한 한 세트씩 연습하였고 번역하는 중간에 쉼 없이 자신 있는 표현으로 채우는데 주력했었습니다. 그렇게 연습을 하다가 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진짜 멘붕이 왔었습니다. 얼른 끝내버리고 싶은 생각과 답답함에 정말 말 그래도 몸부림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시험일로부터 5일 전부터는 아예 공부시간도 평소의 1/3로 줄이고 마음 편히 있었습니다. 시험 전날에는 다른 거 하나도 안 하고 단어노트와 문법노트만 보고 푹 쉬었습니다(물론 잠은 한 숨도 못 잤지만요).
시험당일 및 시험전략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시험날 아침에는 부슬비가 내리며 날이 을씨년스러웠는데 시험 끝나니까 맑아졌었다지요. 전날 한숨도 못 자고 아침에는 긴장감에 속이 메슥거려 커피만 마시고 시험장에 들어갔었습니다. 앞뒤, 양 옆의 모든 분들이 시험시간 직전까지 공부하시는 동안 전 시험 당일에 공부하면 망한다라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있어 눈치만 보고 있었습니다. 대신 잘 볼 거라고 끊임없이 저 자신을 세뇌시키며 안정을 취했습니다. 마음을 편이 갖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세운 시험전략은 ‘원본을 안 봐도 될 만큼 매끄러운 번역본을 만들자’ 였습니다. 이 부분은 선생님께서도 누누이 강조하셨던 부분이셨습니다. 이에 추가로 영한이 자신이 없었기에 ‘한영은 무조건 잘 보자’도 있었습니다.
시험 지문은 모의고사 및 전년도 시험보다 쉬웠으나 역시 매끄럽게 풀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 있었던 한영을 먼저 풀었는데 한영의 경우 지문 자체가 길었고 정말 다양한 내용이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예술작품으로 시작하여 핵 이슈에 이어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고도 나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핵 이슈와 관련된 부분에서 직역을 하기에는 내용이 너무 추상적이어서 의역을 했었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수업에서도 몇 번 커버했던 내용이어서 자신 있게 써내려 갔었습니다. 그리고 문법 오류로 감점 받지 말자는 생각에 나중에 검토할 때 문법에 신경을 많이 썼었습니다. 영한은 한영에 비해 지문이 짧았고 정말 운 좋게도 주제가 경영학 전공에 경제연구원을 다녔던 저의 배경이 도움이 될 만한 주제였었습니다. 하지만 첫 문장부터 고민은 시작되었고 역시 어떻게 매끄럽게 풀 것이냐가 관건이었습니다. 전 한영보다 영한에서 의역을 훨씬 더 과감하게 했었습니다. 아예 원문이 드러내놓고 있지 않은 뜻을 풀어 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도전이었던 것 같기도 한데 이 결정이 제게 장학금을 안겨준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봅니다. 모르는 단어가 4개 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 티 안 나게끔 매끄럽게 지어(?)냈었습니다. 한영과 영한 모두 결국 ‘매끄러운 번역본’을 써내는 것을 주 목표로 삼았었는데 그 부분은 나름 달성했다고 생각합니다.
평소에 공부할 때 ‘시간은 짧게, 지문은 길게’를 고수했었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도 긴 지문을 모의고사로 출제하셨었는데 시험 당일에 많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전 영한, 한영 각각 두 번씩은 검토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누누이 강조하셨었는데 마지막에 번역 후 검토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정말 큰 것 같습니다.